측은한 탈북자여! 자신의 인권에 침을 뱉지 마라!

 

 

 

-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에 북한주민의 인권을 상납하지 말기를...

- 대남적화 선거전을 통해 남한 정권을 쟁탈하자!

- 종북세력은, 대남적화 선거전의 용병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인권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고 인권문제를 이슈화 시키면 사람들이 외면을 한다. 그 사람의 말에 수령독재에 저항하여 목숨을 걸고 탈북한 탈북자유민으로써 반론을 하지 않았다.

? 이유는 그 사람도 탈북자이기 때문이다.

 

탈북자가 북한을 탈북하여 외부 세계를 접하게 되면 크게는 두 가지 부류로 변이가 된다.

 

한 부류는북한인권운동을 하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죽이는 길이고, 조용히 살면 가족들은 무사하다라고 생각하는 부류이고, 또 한 부류는우리가 가족을 잃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탈북의 그 정신으로 지금의 인권운동을 통해 북한사회를 개선하지 못하면 우리의 불행과 슬픔은 영원히 지속된다, 북한인권개선운동이야 말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북한주민을 구하는 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 글을 통해 탈북자,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십니까? 그리고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도 후자도 인간적인 생각 범위에서 다 옳다고 생각한다. 전자로 치면 가족애적인 마음이 강한 반면 후자로 치면 민족애적인 마음이 강한 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정권이 이를 교묘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자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정권이 북한주민들을 평생 세뇌교육 시키면서 가장 잘 훈련시킨 교육 중에공산주의적 도덕교육 즉 효도와 충성 교육을 잘 시켰다는 점이다.

북한의 공산주의적 도덕관은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수령에게 충성을 잘 할 수 있으며 효는 충으로 이어진다는 관념이다.

 

한국 사회의 효와 충의 개념과 원천적인 부분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북한정권은 효를충을 감시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친척의 8촌까지 잡아가는 연좌제와 연결시켜 가족과 친척을 인질로 잡아놓고 주민들이 수령독재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국가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사회에서 평생 살다 보니 탈북자들은 북한사회 안에서 친지들과 가족들의 인권유린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발설을 못하고 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사실 앞에 머뭇거리고 있다.

육체는 탈북했으나 정신은 아직 북한의 수령독재에 묶여 있다는 반증이며 북한정권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

 

이는 과거 일제가 한국의 독립투사들에게 썼던 방법과 똑 같다. 

 

과거 일본은 한국 강점시기 반일감정이 높은 조선인들을 요시찰 대상에 등록해 놓고 가족들을 인질로 내세워 항일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늘 위협하고 감시해 왔다.

오늘날 북한 정권 또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놓고 탈북민들이 수령독재의 죄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하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있다.

 

전자가 모르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북한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독재의 죄성을 은폐하기 위해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정치 쟁점화 시켰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대남 적화 전략 중에 무력통일관과 선거전이 있다. 무력 통일관은 말 그대로 무력 즉 전쟁을 통해 남조선을 해방한다는 것이다.

선거전은 민주주의 최대 장점인 선거를 이용해 정권을 쟁탈하여 남조선사회의 적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무력 통일관은 북한 수령독재 정권의 창시자 김일성이가 늘 주장했던 대남적화전략이며 이는 김정일이가 핵을 만들어 대미대항 전략에도 적극 활용했던 적화전략중의 하나이다.

 

선거전은 해방 후 한국의 남로당(남조선 로동당) 당수였던 박헌영이가 월북 후 김일성에게 제기한 아이디어 중 하나이며 김일성은 자신은 주석, 박헌영은 부주석으로 내세운 후 남한에 남아 있는 남로당 지하 조직들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이 전략을 현실화 시킨다.

 

원래는 북한군이 남조선 해방을 위해 무력전을 펼칠 때 남한 내부에서 빨찌산 투쟁을 벌여 북한군과 협력하는 형태의 빨찌산 부대를 키울 목적이었지만 정전이 고착화 되면서 이 조직들은 선거전 용병으로 탈바꿈한다.

 

그 후예들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종북 세력들이다.

 

과거 지하에서만 활동하던 세력들이 남북 이데올로기와 남한사회 민주화의 틈새에서 곰팡이 마냥 서식하여 오늘날 당을 만들어 내고, 국회의원을 만들어 냈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급변하고 있던 간에 김일성의 오랜 대남적화 전략 중 하나인 선거전 장기화가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다.

 

이 오래고 긴 과정에서 북한정권이 상시 내세운 전술 중 하나가 남북 사이 이데올로기 보다 남한사회 안에서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남남갈등을 조장하여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대남적화 선거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균열은 곰팡이가 가장 잘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균열의 핵심은 처음에는 한국 국민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겨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이 한국의 미군주둔을 더 바란 사람은 북한의 김일성이다.

 

한반도의 제왕의 꿈을 이룩하자면 전쟁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김일성으로써는 형편없는 북한의 초기 군사력 가지고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꿈이기에 소련과 중국의 무력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고 그 명분이 미군이었다.

 

또 핵의 위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김일성이다.

미국이 일본에 던진 원자탄이 자신을 조선의 수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김일성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정전 이후에는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 노선을 내놓고 화학무기 개발과 핵개발을 추진해야 하는데 막대한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이 사업을 주민들에게 설득시킬 명분이 필요했고 이것 또한 미국이었다.

 

90년대 후반 북한에 경제 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300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굶주림에 아우성이고 북한정권은 굶주림의 원인을 돌릴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과 그 연합세력이 우리 공화국을 경제 봉쇄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산다고 경제 붕괴의 원인을 미국한테 돌렸다.

 

또 자주와 주체를 강조하고 있는 북한정권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안에서의 중--미의 군사적 대치 균형이 자립적(자주권) 체면을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생명 줄이다.

 

이런 북한정권 입장에서 한반도의 주한미군 주둔은 득이 되면 되였지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한국 사회를 가장 분열시키기 좋은 명분이 주한미군 주둔이다.

결국 주한미군 주둔은 한국사회안에서는 남남 분열을 만들어내는 이슈로, 북한 내에서는 군사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명분으로, 외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는 최대 효자상품인데 그런 북한이 진정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바란다고 생각하는가.

 

남남갈등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글을 두서 없이 길게 쓰게 되었지만 좀더 이야기를 한다면 남남갈등의 또 다른 요인들은 지역간 갈등, 계층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국가보안법 문제, 북한인권문제 등등이다.

 

그러면 갈등은 무엇으로 만들어 내는가, 이데올로기 즉 사상과 견해, 이념의 차이를 이용하여 만들어 낸다. 작게는 말다툼이지만 크게는 사회의 분쟁을 만들고 적대시 하게 되는 감정을 만들어 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한다면 북한인권 문제가 한국사회의 이데 올리기로 등장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때부터 이다.

 

한국의 역사상 소위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는 야당이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때부터이다.

당시 한국사회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화 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한국민주화 세력의 실상은 정말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진짜 민주투사와 민주화의 탈만 을 쓰고 북한의 대남 적화 전략의 목적으로 키워진 종북 세력들로 섞여진 혼합집단이라는 사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누가 진짜 민주화 투사이고 종북 세력인지 구분이 안가는 애매 모호한 부분이 많다. 서로 민주화를 이룩해 냈다고 하는 혁명동지들 사이에도 구별을 못할 정도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해석을 하면 한국의 민주화가 정말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혁명가들의 노력으로 되였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공들인 북한정권의 대남적화전략인 선거전에 의해 되였는지 확실치 않다는 말도 된다.

 

어째든 이런 민주화 투사들로 자칭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첫 실시한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이다.

한국의 독재사회를 반대하여 화염병을 던졌던 사람들이 북한의 수령독재를 향해서는 돈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태가 이쯤 되자 한국의 보수세력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민주화라고 하는 역사적인 진리 앞에 자신들이 당했는데, 가만히 보니 자기들 보다 더 한 짓을 하는 것이다.

화가 난 보수 집단이 한국의 일반국민들에게 햇볕정책의 허위성을 알려야 되는데, 마땅히 공격 할 명분이 없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북한인권문제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는 보수진영의 문제로만 취급된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 반대파가 내세웠으면 옳은 것도 싫어 지는 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전 세계에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인권문제는 가장 진보적인고, 가장 민주주의적이며, 가장 비정치적으로, 보편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문제로 여기고 받아들여지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사회 내에서 북한인권문제는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비민주적이며, 가장 정치적인 문제로 쟁점화 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전략에 대해 잘 모르는 일부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한국사회안에서 북한인권문제 외면의식에 대한 특이한 현상을 놓고 남북간의 역사적인 문제로, 남북한 대치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다룰 때가 있지만 이는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고 본다.

 

북한인권문제는 어찌 보면 한국사회안에서 색깔론에 악용된 하나의 병폐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실은 그 역사를 따지고 보면 북한정권의 오랫동안 공들여 온 대남 적화 전략의 효과인 남남갈등의 산물이다.

 

최근 들어 인권문제에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사면초가를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입장으로써는 북한인권문제를 더욱 정치 쟁점화로 만들어 갈등과 분열을 싫어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갖게 만드는 것, 무관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이 자신들의 인권유린의 죄성을 가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북한의 대남기관들과 사이버 부대들에서는 온갖 루머성 게시글들과 댓글들을 이용하여 아주 교묘하게 북한인권문제가 남북간의 정치적인 문제인 것처럼 포장하여 유포하고 있으며, 온라인과 여론을 통해 한국국민들의 인권관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렇게 한국사회에 팽창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 외면의식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에게도 전이가 되어 자기들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문제로 잘못 해석하여 수령독재의 죄상을 폭로하는 정의의 투쟁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북한인권문제를 외면하는가는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국제사회 인권문제에 있어서 제일 활발한 활동을 하는 단체가국제 사면 위원회이다.

그런데 영국 런던에 위치한 본부는 북한인권문제를 핵심활동의 하나로 정하고 있는데 한국지부 국제사면위원회는 한국 사회 내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한인권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바라보는 한국사회 시각이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권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한국사회와 일부 탈북자들의 잘못 형성된 인권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북한 수령독재 정권의 전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지구상의 그 어떤 국가도 인권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은 기본적인 본능의 문제이지 사회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외부 사람들이 탈북자이면 당연히 다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에 참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위에서 지적한 요인들이 일반 탈북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소는 하고 싶다. 누가 뭐래도 수령독재에 저항하여 목숨을 걸고 탈북을 결단한 탈북자들의 의로운 행동은 첫 북한 민주화 운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이야기 하고 싶다.

북한인권운동은 단순히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운동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운동이라고...

 

과거 우리역사에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운동 중에 항일 운동이 있었다.

어떤 이는 가족을 구하고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항일을 했고, 또 어떤 이는 가족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다는 명분하에 친일을 했다.

 

명분은 같지만 방법이 달랐다.

북한인권운동은 20세기 항일운동, 21세기 반 수령독재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어떤 이는 눈감고 침묵하는 것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며 북한독재정권과의 화해를 외치고, 또 어떤 이는 북한인권운동이야 말로 북한주민을 구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북한인권유린에 침묵해야 한다는 탈북자들, 가족의 영원한 해방을 위해 북한주민의 인권개선 운동을 더욱 광범히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북민(탈북 자유민)들

 

어떤 선택이 가장 진보적이고, 인간적이고, 절대불변의 진리인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탈북자,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고, 왜 여기까지 왔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누구 인가고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재유럽 조선인 총연합회 김주일 사무총장

ifreen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