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구분하기 위한 전략

 

북한문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것은 인간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될 수 있으나 국가정책이나, 국제사회 정책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서 결정적인 조언자가 되는 전문가들의 잘못된 해석은 그냥 오류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경제적 손실과 인류의 피해가 크다.

 

따라서 한 국가의 정책을 수립하거나, 국제사회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서 정확한 판단과 기준은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인권유린 지대인 북한문제를 놓고 정책을 결정할 때는 매우 심중해야 되며 북한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필요하다.

 

환자의 상태를 꼼꼼히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사와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의 말만 듣고 처방하는 의사의 진단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대북 문제에서 국제사회 오판은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의 생명하고도 깊은 연관이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만 따지고 인기위주의 실적에만 연연하다 보면 북한주민의 인권은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며 북한주민의 불행의 삶은 영원히 요원하다.

진정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북한주민의 행복한 삶을 바란다면 북한주민과 북한정권을 정확히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북한인권문제나, 인도주의, 민주주의 문제에 있어서 북한정권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대북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북한정권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인권문제나 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북한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북한정권의 속성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감상주의 논리에 불과하다.

 

북한에서 실지 살았던 탈북자유민들은 북한의 3대 세습의 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과 민주주의는 존립은 생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왜 그렇게 말하겠는가?

단순히 북한을 탈출해 나왔다는 혐오심리 때문에 그럴 가.

아니다. 탈북자유민들은 북한을 탈출해 나와도 아직도 그 땅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반대 논리로만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가슴속에는 하루빨리 가족들과 친지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해방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북한사회가 변화되길 원한다. 그런 그들이 왜 국제사회 인도주의 지원이 현 체제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가?

그것은 북한에서 살면서 3대 세습정권의 기만성과 처세술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탈북자유민들의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북한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햇볕정책과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과거 한국정부 햇볕정책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적인 시각에서 볼 때에는 북한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이 정책이 그럴듯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북한주민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착취하고 있는 포악한 군주의 생명만 더 연장시켜 준 아주 꼴 보기 싫은 정책이다.

 

햇볕정책이 한국사회에서는 상당히 진보적 정책으로 평가될지 모르겠지만 북한사회에는 남한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실지적인 피해를 본 사람들은 바로 북한 주민들인 것이다.

 

북한사회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햇볕정책은 북한정권을 위한 햇볕이었지 북한 주민을 위한 햇볕이 아니 였던 것이다.

햇볕정책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정책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북한주민의 시선에 맞춘 정책이 아닌 북한정권에 맞춘 정책이었기 때문이며, 북한사회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햇볕을 오래 쪼여주면 아무리 은둔의 북한이라도 언젠가는 양지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감성적인 기대심리와 상상력 만으로만 작성 된 환상소설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했다.

 

햇볕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을 위한 정책이다. 갑작스러운 북한정권의 붕괴는 한국국익과 경제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며 극도로 낙후된 북한사회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국의 입장에선 북한 독재정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햇볕정책은 한국을 위한 대북정책에선 성공했을지 몰라도 북한 주민을 위한 대북정책에선 실패한 정책이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고 일방적인 상상력으로 무슨 일을 기획하려는 시도는 꼭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예컨대 우리의 생활에서 사람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일과 비교해 보도록 하자.

대접은 상대에게 잘해 주려는 마음이다. 그 대접이 진정으로 방문자에게 기쁨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없이 좋은 대접이지만 상대가 싫어한다면 실패한 대접이다.

 

코리아에는 매운탕이라는 음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별미에 속하며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코리안 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음식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음식을 전혀 만들어보지 못하고 자란 한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평소에 남편에게 특별히 좋은 음식을 해주고 싶었던 아내는 할 줄 모르는 요리솜씨를 발휘해 가며 매운탕을 만들어 저녁상에 올려 놓았다.

퇴근해 집에 들어온 남편은 아내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매운탕을 먹지도 않은 채 다른 음식을 요구했다.

물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은 수산물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거들떠 보지 않은 남편에게 속상한 아내는 그만 울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먹지 못하는 음식도 아내의 정성을 봐서라도 억지로 먹어야 하는 눈치 없는 남편이 문제인가, 아니면 남편의 몸 상태와 식성은 잘 알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자신의 노력만 봐달라는 우는 아내가 옳은 것인가?

문제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 사람의 기준에 맞춰 요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또 같은 원리이다. 서방국가들이나 국제사회가 자기들의 일방적인 기준에 맞춰 대북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북한 사회에 알맞은 정확한 처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북한의 실체를 잘 알아야 한다.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독재국가들이 가졌던 것과 완전히 다른 독재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며, 현 상태의 북한정권은 독재정권이 교체되지 않은 한 절대로 북한의 문호를 열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원조를 자칭하는 과거 소련은 위대한 인민이 있어 그로 인해 위대한 수령이 만들어 진다는 논리로 사회주의를 지탱했지만 북한은 위대한 수령이 먼저 탄생하고 그 수령의 위대한 영도로 인해 인민이 존재한다는 수령절대주의 논리를 추구하는 국가이다.

 

정권유지에 있어서 북한은 이 수령절대주의를 고집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겪는 불행보다도 정권유지가 최우선 일이다. 300만 주민이 굶어 죽어도 정권만 유지되면 된다는 반인민적 강도 논리가 통하는 사회가 바로 북한이다.

따라서 그 어떤 국가적 국익도 정권유지에 위협이 된다면 하루아침에 국가정책을 뒤 짚어 엎는 것이 북한정권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즘 북한이 ‘6.28경제관리 조치’라는 미명하에 배급제를 폐지하고 시장 경제를 활성화 한다는 뉴스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먹고 살기 힘든 주민들의 불만이 항거로 이어질 경우 내일이라도 당장 ‘6.28 경제관리정책’을 폐기하고 반항하는 주민들을 정치범으로 몰아 수용소에 보내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때문에 국제사회는 대북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반드시 북한 정권과 주민을 구분해 수립해야 하며 주된 지원대상은 독재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이어야 한다는 절대원칙을 세워야 대북지원에서 오류를 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