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왜 북한에서는 중동 혁명 같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북한은 사회 체계 자체가 중동 같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민중혁명은 크게 3가지 단계인 의식화, 조직화, 투쟁화를 거쳐 진행된다.

이는 인류 역사발전적 법칙이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교훈이다.

 

중동 민주화 혁명도 이 순서에 의해 일어났다. 겉으로는 소셜 네트워크나, 핸드폰과 같은 현대식 네트워크 수단이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막에는 민중혁명의 이 3가지 법칙이 철저하게 작용했다.

 

먼저 혁명에는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합리함을 깨우치고 인지한 의식화된 군중이 있어야 한다.

혁명 수행과정에서 깨여난 군중의 힘은 강대하며 이를 막을 독재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깨여난 군중만을 가지고는 혁명이 저절로 일어나겠지 하고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분노와 폭발이 서린 군중의 힘을 하나로 묶어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한국속담에 ‘구슬도 꿰야 보배’라는 소리가 있다. 하나 하나의 구슬은 보물로써의 의미가 작지만 이 모두를 하나로 꿰여 목걸이로 만들어야만 상품가치로써의 훌륭한 보물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손도 각자 손가락의 힘은 보잘것없지만 한곳으로 모아 주먹을 만들면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과 똑 같은 이치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주민 의식화를 만들었다고 하여 깨어난 주민이 저절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조직 동원할 수 있는 조직화가 이루어져야만이 비로서 혁명이 시작된다.

깨여난 하나하나의 주민은 흩어져 있는 구슬과 같은 것이요 이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조직의 힘만이 혁명을 인민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수가 있는 것이다.

 

의식화와 조직화가 되여 있는 군중만 있으면 혁명은 성공할 수가 있는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옳은 투쟁방법, 즉 옳은 전략전술이 없는 투쟁은 망망대해에 등대 없이 떠도는 희망 잃은 배와 같다.

 

의식화와 조직화로 단련된 군중이 있어도 올바른 투쟁방법과 그것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으면 그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투쟁화의 단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전략전술을 구비할 수 있는 지도층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사공이 없는 배가 풍랑을 만나 좌초가 되는 것과 같다.

 

북한은 민주화 과정의 3단계인 의식화, 조직화, 투쟁화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진 않다.

외부와 완전 차단된 속에서 평생 동안 강요당하는 세뇌교육으로 인해 북한주민의 자유의식은 완전히 마비가 되어 있다.

 

황장엽 선생은 북한주민의 자유의식 마비에 대해 자신의 비망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문제는 교육 내용에 있다. 탁아소 유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이르기 까지 모든 교육내용에는 수령 우상화가 기본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모든 학과 과목이 수령의 유일사상으로 일관되어 있다.

수학이나 자연과학 교과서도 매장, 매절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가르치심이 인용되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 하는 사업을 ‘위대성 선전’이라고 하는데, 모든 학과목의 교수사업이 예외 없이 수령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목적에 맞게 진행되도록 당 조직이 엄격히 통제한다.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시절을 따라 배운다는 것이 교육의 기본 내용으로 되고 있다.

 

초등 학교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률적으로 전 학과목의 33.3%, 즉 전 과목의 3분의 1이 수령 우상화 과목들이다.

 

여기에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활동 역사와 김일성, 김정일 저서 그리고 그들을 우상화한 문예작품 등 전적으로 수령 우상화를 취급한 학과들이다.

이 점에서는 대학의 사회과학계통의 학과는 말할 것 없고 물리학부나 외국어 문학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정식과목으로 들어가 있는 33.3%의 우상화 과목만 학습하면 우상화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청년조직과 소년단 조직이 학생들을 붙잡고 소위’사회 정치 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우상화 교육을 한다.

나는 대학 총장으로서 또는 중앙당의 과학교육 담당비서로서, 이러한 우상화 교육이 너무도 한심하여 청년조직에 의견을 제기하였으나 우상화 교육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그들의 답변이었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평생을 자란 북한주민의 의식 속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아의식이 아닌 수령의 교시와 말씀에 기준하여 판단하는 이상한 북한 식 기준이 생기게 된 되였다.

 

수령에게 완전히 의식을 빼앗긴 인민이 사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며 이것이 중동과 다른 북한의 사회적 특수 환경이다.

그래서 북한 주민의 의식화의 첫 단계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이 거짓된 수령의 우상화 역사가 날조 되였음을 알려주는 활동부터 전개해야 한다.

 

혁명의 두 번째 단계인 조직화가 형성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중동보다 낮다는 것이 북한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다.

 

북한의 조직논리는 세포논리로부터 시작된다.

작은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것처럼 당이라는 조직도 하나 하나의 세포조직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논리가 북한 식 조직론 이다.

북한이 규정하고 있는 조직은 세 명 이상부터 모이면 하나의 세포를 이룬다고 명시한다.

 

그래서 북한 노동당 규약은 생활총화 즉 자아비판을 3명이 모여 있는 단위(단체)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명이 모여있는 단위를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이기에 주민감시통제도 3명 중에 한 명은 감시조직의 스파이가 있을 정도이다.

 

인민반 감시, 당 조직 감시, 보위부 감시, 안전부(지금은 보안부) 감시 등 3중 4중의 감시체계가 북한주민들을 24시간 인간CCTV가 되어 감시하고 있다.

이러한 감시체계를 구비한 국가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내를 보이기 꺼려하고 있으며, 설령 북한사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나와도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더욱이 외부의 소식은 더 하다.

 

조직화에서 기본은 관계와 연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철저한 감시 시스템을 통해 관리해 가고 있는 국가가 북한이기 이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을 통해 조직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또한 교통의 자유나 이동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아 이웃 군을 갈 때 조차도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허가를 받고 가야 하기 때문에 조직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내구성이 약하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중동과 같이 최소한 가정집들에 일반전화가 있어야 최소 네트워크 구성이 가능한데 북한 가정집 들에는 아직까지 일반전화조차도 구비가 안 되여 있으며, 핸드폰과 같은 통신환경이 전혀 없기 때문에 중동에서 말하는 소설네트워크나, 핸드폰 메시지 같은 통신기기에 의존한 네트워크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일반전화, 핸드폰, 인터넷도 전혀 안 되는 사회가 북한사회이다.

 

최근 뉴스를 통해 평양을 중심으로 이집트 통신사가 들어가 북한과 합작하여 고려통신사를 오픈 했다는 소식을 접한바 있다.

 

평양시민 위주의 핸드폰 구입자 계층을 가만히 살펴보니 배고픔을 호소하며 독재정권과 싸울만한 민주화 계층이 아닌 북한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핵심계층,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행복도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계층들이 핸드폰 구입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핸드폰 가격도 문제이지만 매달 핸드폰 사용료가 거의 선진국수준인데 일반주민들은 상상도 못하는 액수를 놓고 마치 북한에 그 무슨 변화가 온 것처럼 이슈화 시키는 언론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북한의 핵심계층은 절대로 민주화 세력이 될 수가 없으며 3대 세습의 독재와 싸우지 않는다.

 

중동처럼 ‘빵을 달라’외치며 독재자를 반대하여 일어난 시민들처럼 북한도 실제로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낼 당장 돈이 없어 아픈 아이에게 한 알의 약도 사 먹일 수 없는 계층이 일어나야 한다.

 

실제로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 계층이 일어나야 북한의 민주화는 이루어진다.

주민들이 굶어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수령에게만 충성하는 계층, 그 수령이 있어야 나도 잘 살수 있다는 계층은 절대로 인민의 배고픔을 알 수가 없다.

이 계층은 외부의 소식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을 해도 자신들의 유행과 스타일을 위해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 핸드폰 사용료에 수십 달러를 써도 굶어 죽어가는 주민들을 위해서는 한 푼도 안 쓰며 오히려 그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계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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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간 탈북자들의 통계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는 현재 2만4000명의 탈북자들이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계층을 분석해 보면 엘리트 계층이 15% 정도이고 85%가 일반 주민 계층이다.

이는 북한독재정권에 대항하여 가족을 잃은 슬픔, 목숨도 잃을 수 있는 희생도 감수하며 실제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계층은 일반주민들이라는 사실을 잘 증명해주는 현실적인 통계이다.

북한의 모순된 현실을 인식한 핵심계층일지라도 가진 것이 많은 부유층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독재와 싸우지 않는다.

 

다음으로 북한 내에서 조직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내구성은 무차별적인 처벌과 처형, 종신형, 연좌제와 같은 반인류적 수용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설령 외부소식을 접하고 북한사회의 모순된 점을 깨우쳤다고 할지라도 나로 인해 내 가족이 처형되고, 수용소에 수감되는 비극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공포정치로 북한을 통제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그 두려움 때문에 반항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주민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해 나온 탈북자들 속에서도 같은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최악의 인권유린지대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 탈북자들을 보면서 언뜻 생각하기에는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열심히 싸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이 겪을 피해 때문에 자유의 땅에 와서도 숨을 죽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하려면 공통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이 얼굴을 공개하지 말라거나, 목소리를 변성해 달라고 하는 주문들이다.

 

그러면 이들이 북한에서 모두 고위층에 종사하던 출신들이되 서 그런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북한에서 그만큼 연좌제에 대한 공포정치를 직접 목격했거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육체는 북한을 탈출했지만 정신은 아직도 독재정권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자유를 찾았다는 탈북자들의 정체성의 현주소이다.

 

이는 북한정권의 공포정치가 얼마나 잔인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사회의 인권개선과 연좌제 폐지, 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같은 강력한 인권활동을 통해 북한정권의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투쟁화 단계를 이끌어 갈수 있는 지도역량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외부와 완전 단절된 속에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치관이 형성될 나이인 13세부터 17세 학생들이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은 것은 우상화 교육밖에 없으며, 그나마 배울 수 있는 일반교육 조차도 북한정권이 짜놓은 대본대로 배워야 되기 때문에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의식구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실체를 정확이 꿰뚫고 있는 탈북자 출신의 엘리트 인권운동가들도 만약 아직도 북한에 살고 있다면 수령독재체제의 진 모습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외부와 단절된 북한사회에는 비교대상이 없는데 무엇을 놓고 비교 하겠는가.

 

탈북자유민들이 향후 남북통일의 가교자, 북한 민주화 운동의 리더로 촉망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북한이라는 폐쇄된 환경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지 북한 내에서는 절대로 이런 민주화 의식, 인권의식을 사고해 낼 수 없다.

 

민주주의 사고를 가진 지도자들이 자라날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없기 때문에 북한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정권교체운동은 민주주의 정권교체 운동이 될 수가 없으며 수령만 바뀔 뿐이고 독재형태의 시스템은 그대로 가지고 갈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때문에 북한 민주화 운동은 반드시 외부의 사조에 의해 관리 지휘가 되어야 하며 투쟁화 단계에 있어서 그 조직역량은 북한과 남한, 국제사회를 다 골고루 경험한 탈북자유민 지도자들이 되어야 만이 북한 사회를 진정한 자유와 민주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