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서울평화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수상 소식을 듣고 북한민주화 위원회 황장엽 위원장은 모든 탈북자들의 자랑이고 기쁨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과 황장엽 위원장과의 인연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수잔 솔티: 황장엽 선생이 1997년 망명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로 저는 계속해서 그 분을 미국에 초청하여 모시고 싶었습니다. 6년이란 세월이 흘러(2003년 황 위원장의 미국방문이 성사됨, 편집자 주)그 일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 황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또 그 분을 훌륭한 벗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황 선생께서 강력하게 또한 열정적으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 외쳐 오신 모습을 존경합니다. 또한 황 선생님은 우리의 과업에 대해서 언제나 제게 지혜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황 선생님은 북한의 자유를 지지하는 탈북자들의 활동에 큰 영감을 주어 오셨습니다.
이러한 큰 상을 받게 되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그러나 이 영광은 탈북자 동지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분들이야말로 저에게 그러한 영감을 전해주고 제가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모든 탈북자들을 대신하여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수잔 솔티: 제가 처음 디펜스포럼재단(Defense Forum Foundation)의 회장이 되었을 때 우리 재단은 주로 미국 국가 안보와 방위 문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재단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집권 이후 국가 방위를 재건하는 것이 미국에게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 중에 설립되었습니다. 군사력에 의존한 냉전시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를 유지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힘을 통한 평화, 즉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1989년 DFF 회장이 되었을 때 저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해외의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확대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되는 나라들은 동시에 자국 국민들의 인권을 부정함으로써 그 나라 국민들에게도 큰 위협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소비에트연방, 쿠바, 중국 및 유사한 다른 나라들의 전체주의적 정권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을 워싱턴으로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민주주의에 관한 진실로부터 어떻게 고립되고 세뇌되어 왔는지, 그리고 자유를 품에 안아보기까지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알게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로부터도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온 북한이야말로 세계에서도 가장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독재국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1996년 한국정부에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97년 저는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씨와 군에서 대령으로 복무하던 최주활 씨를 워싱턴으로 초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열정적으로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어려서부터 미국을 증오하도록 세뇌 당하는 것과 국민들이 기아로 굶어 죽어갈 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된 식량들이 어떻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지와,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끔직한 좌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최 대령님과 고 선생님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제도를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미국의 어느 누구도 북한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즉시 그러한 수용소를 체험했던 증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의 생존자인 강철환씨와 이순옥씨, 수용소의 간수였던 안명철씨 등이었습니다. 그 후 약 1년 동안 저는 미국 의회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의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설득해왔고 마침내 지금까지 서로 다른 방문을 통해 57명의 탈북자들을 초청해서 청문회를 열어 왔습니다.

기자: 그동안 북한의 민주화와 탈북자들의 권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수잔 솔티: 북한난민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 앞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탈북자들의 경험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정부의 잔혹행위가 중단되도록 노력하고, 또 미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돕도록 설득하고 김정일을 지원하는 일을 그만두도록 노력하는 일 등...하는 일 가운데 쉬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북한의 인권상황만큼 끔찍한 비극이 없었고 모든 인류가 이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는 신념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후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자유세계에서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우리는 또 르완다사태 이후에도 이러한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습니다.

저는 나치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끔직한 비극과 견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유태인들이 겪었던 공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르완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나 오늘날 다푸르나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폄하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르완다의 끔찍한 학살 속에서 거의 일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다푸르에서는 수단 독재자의 잔인성 때문에 삼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난민촌의 끔찍한 두려움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김정일은 지난 10년 동안 기아 속에서 허덕이는 자국 국민들에게 식량을 무기로 삼아 거의 삼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여 왔습니다. 거기에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공개 처형 당한 사람들, 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이 죽인 사람들까지 합치면 죽은 사람들의 수는 홀로코스트 동안 독일의 나치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에 육박합니다.

또 다르게 비교해볼 수 있는 예는 버마의 군사독재와 군사의회의 끔직한 압제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버마에 약 2천명의 정치범들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2005년도에는 정치범들을 면담하려 했던 국제적십자사의 방문도 거절당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수용소에서 태어난 아이들까지 합치면 거의 20만 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십자는 지금껏 단 한곳의 북한 수용소도 방문해보지 못했습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이 북한에 보낸 원조를 모두 합해본다면 단 한 명의 북한사람들도 배고플 수 없는데 오늘까지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김정일에 의해서 투옥되고 고문 받고 처형될 것이 뻔 한 북한으로 탈북자들을 강제로 돌려보냄으로써 김정일의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도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탈북자들의 형편을 어떻게 우리가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인권의 무시당하는 비극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북한의 우리 형제자매들이 겪는 고통만한 것이 없습니다.

기자: 북한 인권을 위해 일하는 중에 가장 기뻤던 순간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2006년도 북한자유주간 행사(North Korea Freedom Week, NKFW 2006)를 성황리에 마쳤을 때였습니다. 이때 부시 대통령이 한미가족과 김성민씨, 일본인 요코다씨를 만났고 우리는 그 자리를 통해 김정일이 저지르는 부정한 행위와 남한과 일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납치하는 문제, 그리고 한국전쟁포로들의 억류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김정일에 의해 비극을 겪은 사람들 모두와 함께 연대하여 일할 수 있는 깊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성공사례 중에 흔히 볼 수 있듯이 바로 그 주간에도 혼란이 있었습니다. 좋지 못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제가 한국인이 아니라 백인이라는 것까지 언급하면서 저를 공격하였습니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제에 대한 이러한 공격을 알지 못했지만 행사에 참석했던 탈북자들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비난들 때문에 신뢰를 일고 추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을 만나려 서울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제게 말해준 것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수잔, 우리 모두 당신이 깊이 상처받았으며 당신이 지금도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당신의 형제가 되어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이들이 나의 진심을 알고 있고, 덕분에 이들이 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북한자유주간행사에 참석했던 탈북자들과 단체장들은 곧이어 서울을 방문한 수잔과 함께 행사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바 있다)

기자: 수상을 위해서 서울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오십니까. 서울에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수잔 솔티: 10월 7일에 있을 수상식을 위해서 10월 초에 서울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서울을 방문하면 우선 내 형제 자매들인 탈북자 분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황장엽 선생님을 찾아뵙고, 자유북한방송국을 방문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직원 분들과도 만나고, 최근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만나 최근의 북한 소식도 듣고 싶습니다.

강(새터교회의 탈북자 출신 강철호)목사님과 엄(새평양 순복음교회의 탈북자 출신 엄명희)목사님 교회에서 예배도 함께 드리고, 박상학(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씨와 북한으로 풍선을 띄우는 일도 다시 한 번 함께 해보고, 김영일(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씨 외 또 다른 탈북자 분들을 만나 어떻게 활동해 왔는지를 듣고 싶고, 글쎄요...늘 해 오던 대로 하고 싶군요.

이 모든 일을 과거부터 함께 해온 나의 가장 가깝고 절친한 동지이며 친구인 남신우 씨께서 저와 동행해 줄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 남편도 같이 갈 텐데 남편은 특별히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보겠다고 들떠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북한주간행사에 왔었던 모든 탈북자들을 기억하며 특별히 김성민씨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시는 어머니도 함께 동행 하실 것이며, 태어난지 2개월 때 한국을 처음 방문했었던 제 막내아들 제임스도 함께 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모두가 참 힘든 시기를 보내왔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가끔 북한의 인권을 세우는 일은 작은 불꽃 하나를 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정권들이 심지어 자유 정부까지도 이 불꽃을 끄려고 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바람과 눈보라로부터 이 불꽃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서있습니다.

황장엽 선생님은 계속하여 북한의 민주화를 담대하게 외치고 있고, 자유북한방송국의 직원들은 지금도 북한으로 라디오방송을 보내고 있으며, 박상학씨와 그의 형제, 가족들도 계속해서 북한으로 풍선을 보내고 있고, 강철호, 엄명희목사님은 그들의 교회를 이끌고 북한을 구해달라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강수진(탈북여성 인권연대 대표)씨는 방황하는 희생자들이 새로운 삶을 세울 수 있도록 계속해서 그들을 위로하고 있고, 여타의 탈북자 분들도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더 크고 강력한 불꽃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이 불꽃이 단지 거세질 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로 번져 올라서 북한의 주민들이 매일같이 직면해야 하는 어둠과 압제로부터 해방되길 바랍니다. 또한 그들을 구원할 강력한 빛으로 작용할 시대를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